조직의 생존을 위해 내려진 부당한 지시, 그 지시를 이행한 개인은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만약 그 책임의 대가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기, 학령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생존을 위해 무리수를 둔 한 사립대학과 그 과정에서 희생양이 될 뻔했던 한 교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입생 충원율을 조작하라는 학교의 압박에 못 이겨 가족을 '유령 신입생'으로 등록했던 교수. 그리고 그에게 내려진 '해임'이라는 가장 무거운 징계. 하지만 법원은 이 징계가 부당하다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벼랑 끝에 선 대학, '충원율 100%'라는 지상 과제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2020년 당시 김포대학교와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립 전문대학이 처해 있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대학, 특히 신입생 확보가 존립과 직결되는 전문대학에겐 생존을 위협하는 쓰나미와도 같았습니다. 

이러한 위기감은 교육부가 주관하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로 인해 극대화되었습니다. 이 평가는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 재학생 충원율 등을 핵심 지표로 삼아 대학을 등급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부의 일반재정지원 여부를 결정합니다. 

즉, 이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대학의 재정적 위기는 물론, '부실 대학'이라는 낙인과 함께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됨을 의미했습니다.

2020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정원 1294명 중 206명을 채우지 못한 김포대학교는 그야말로 비상사태였습니다. 대학 지도부는 극도의 위기감 속에서 교수회의를 통해 모든 교원에게 '신입생 충원율 100% 달성'이라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반복적으로 독려하고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부탁이나 권유의 차원을 넘어, 교원들의 실적 평가와 연계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강력한 '지시'였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훗날 법원이 교수 개인의 책임보다 학교의 구조적 문제를 더 크게 본 결정적인 배경이 됩니다.

'유령 신입생'의 탄생과 꼬리 자르기식 감사


대학 본부의 전방위적인 압박 속에서, 결국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A 교수를 포함한 다수의 교직원들은 자신의 가족, 친인척, 지인 등을 신입생으로 등록시키는, 이른바 '유령 신입생'을 만드는 작업에 동원되었습니다. 

A 교수 역시 자신의 배우자와 처제를 신입생으로 등록시키고, 사비를 털어 등록금을 납부했습니다. 이들은 입학 절차가 마무리되자마자 자퇴 처리되었고, 납부했던 등록금은 학교로부터 고스란히 반환되었습니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던 입학생들을 통해 신입생 충원율이라는 숫자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명백한 업무방해이자 기만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이 기만행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내부 고발 등을 통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대학은 자체적으로 '허위 입학 특별감사단'을 구성해 진상 조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감사의 칼날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대학 지도부가 아닌, 지시를 이행한 일선 교수들에게로 향했습니다. A 교수를 비롯한 일부 교수들은 감사단의 구성과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감사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학교의 지시에 따른 일인데 왜 우리에게만 책임을 묻느냐'는 항의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대학의 징계위원회는 A 교수가 허위 입학에 가담했고, 감사에 불응하여 교원의 성실의무와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임'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립니다. 

이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식 조치로 비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원의 제동: "징계 형평과 비례의 원칙을 잃었다"

교수직을 박탈당한 A 교수는 교육부 산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고, 소청위는 "해임은 과도하다"며 A 교수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에 불복한 김포대학교 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서울행정법원은 이 길고 긴 다툼에 마침표를 찍으며, 소청위의 결정이 정당했다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이 대학의 해임 처분이 '징계재량권을 일탈한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매우 명확하고 논리적이었습니다.

  1. 책임의 소재: 개인의 일탈인가, 조직적 강요인가?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학교 차원에서 A 교수를 비롯한 교수들에게 신입생 충원율 100% 확보를 반복적으로 독려·압박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적시했습니다. 즉, 이 사건은 A 교수 개인의 도덕적 해이나 일탈 행위가 아니라, 대학이라는 조직이 생존을 위해 구성원에게 비위 행위를 사실상 강요한 '구조적 문제'라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그 비위 행위의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 징계의 형평성: 누구에게나 공정한 잣대인가? 법원은 징계의 '형평성'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A 교수(2명 허위 입학)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허위 입학생 모집에 관여한 다른 교수들이 해임보다 훨씬 가벼운 '정직 3개월' 등의 처분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누구는 무겁게, 누구는 가볍게 처벌하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본 것입니다.
  3. 비례의 원칙: 잘못의 크기와 처벌의 무게는 비례하는가? 법원은 '비례의 원칙'을 핵심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해임'은 교원의 신분을 박탈하고 생계 수단을 끊는, 가장 무거운 징계입니다. 법원은 A 교수의 비위 행위 내용, 학교의 압박 정도, 징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해임'이라는 처분은 그가 저지른 잘못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하여 비례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잘못은 있지만, 그 잘못이 교수직을 영원히 빼앗을 만큼 중대하지는 않다는 의미입니다.

판결 너머의 성찰: '착한 관리자'는 존재할 수 없는가

이번 김포대학교 교수 해임 관련 판결은 우리에게 단순히 '잘못은 했지만 처벌이 과했다'는 사실을 넘어, 조직 내 개인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상부의 부당한 지시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경력과 생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은 비단 김포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적 압박과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된 수많은 기업과 조직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조직은 목표 달성을 위해 구성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지시를 따른 네 책임'이라며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관행. 이번 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비겁한 '꼬리 자르기'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조직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중요한 선례로 남을 것입니다. 

진정한 위기 관리는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인정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이 사건은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

Q1: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A1: 핵심 쟁점은 '신입생 충원율을 높이라'는 대학의 조직적 압박에 따라 허위 입학에 가담한 교수를 '해임'한 것이 정당한가였습니다. 법원은 교수의 비위 행위는 인정하면서도, 학교의 책임이 더 크고 다른 관련자와의 형평성, 비위의 정도에 비해 해임 처분은 지나치게 과도하여 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Q2: 법원이 '비례의 원칙'을 언급했는데, 무슨 뜻인가요? A2: '비례의 원칙'이란, 어떠한 행정 처분(여기서는 '해임' 징계)을 할 때, 그 처분을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적 목적과 그로 인해 개인이 입게 되는 불이익 사이에 합리적인 비례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법의 원칙입니다. 법원은 교수의 잘못에 비해 해임이라는 처벌이 주는 불이익이 너무 커서 이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았습니다.

Q3: 교수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A3: 법원이 대학의 해임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에, 김포대학교가 상고를 포기한다면 판결은 확정되고 교수는 교수직을 유지하게 됩니다. 다만, 대학은 해임이 아닌 정직 등 보다 가벼운 수위의 징계를 다시 내릴 수 있습니다.

Q4: 이 판결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A4: 이 판결은 개인의 비위 행위가 발생했을 때, 그 행위가 일어난 배경에 조직적인 압박이나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면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조직의 부당한 지시에 대한 개인의 책임 범위와 조직의 관리 책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